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토니오 비발디 (문단 편집) === 오페라 === >'비발디의 웅장한 《다리우스 왕의 대관''Incoronazione di Dario''》(RV 719)이 박수갈채 속에 초연되었다' > >『팔라데 베네타』(Palade Veneta) 1717년 1월판 현재는 그렇지 않지만 당대의 비발디는 기악 작곡가보다는 오히려 오페라 작곡가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그의 기악작품이나 종교음악은 주로 피에타 학교 학생들의 음악 연습이나 연주회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작품집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네덜란드 같은 타지에서 많이 출판되었기 때문에 비발디 입장에서 봐도 가장 큰 경제적 성공을 가져다준 것은 오페라였다. 다만 비발디는 당대에 분명 인기 오페라 작곡가이긴 했지만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다른 유명 오페라 작곡가들, 예를 들어 [[안토니오 칼다라]]나 [[발다사레 갈루피]], [[요한 아돌프 하세]], [[니콜라 포르포라]] 등에 다소 밀리는 편이었다. 해외에서 그의 오페라에 대한 인기도 오페라 자체보다 기악곡의 대가로 알려진 그의 명성에 기댄 바가 컸다. 그가 작곡한 오페라 수 자체도 당대의 유명 오페라 작곡가들에 비하면 딱히 많은 것은 아닌데, 예를 들어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는 115편, 발다사레 갈루피는 109편, 요한 아돌프 하세는 73편, 니콜라 포르포라는 55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오페라 갯수도 갯수지만 자신이 흥행감독으로 있던 베네치아 산탄젤로 극장을 제외하고는 소위 메이저 극장에 올린 작품수가 적고 작품당 공연 횟수도 적은 편에 속한다. 물론 인기와 작품성은 엄연히 별개이며 비발디의 오페라가 동시대 다른 작곡가에 비해 음악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비발디 자신의 말로는 평생 94편의 오페라를 썼다고 하는데 미완성이거나 악보가 소실되고 공연기록만 남아 있는 것까지 포함한 현존하는 비발디의 오페라는 51개이다.[* 최근까지도 비발디의 알려지지 않았던 오페라가 계속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이 숫자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그의 작품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그가 다른 작곡가와 공동으로 작업한 오페라가 상당수 있고 다른 작곡가의 미완성작을 자신이 완성해서 공연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안나 지로의 가수 데뷔작인 '불행한 행운의 님프'가 이런 경우이다. 현재 악보가 남아 있지 않아서 정확한 것은 알기 어렵지만 공연기록을 보면 주세페 보니벤티의 원작을 비발디가 수정 보완해서 완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참여한 오페라까지 모두 합하면 비발디가 말한 94개라는 숫자가 허풍만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온전하게 창작한 오페라는 94개는 고사하고 51개보다도 훨씬 적다. 당시 오페라는 대체로 공연 사이클이 짧았기 때문에 작곡가들은 상연 속도를 맞추기 위해 자신이 기존에 작곡했던 곡이나 다른 사람이 쓴 곡을 무단으로 도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비발디의 오페라도 결코 예외가 아니어서 심한 경우에는 절반 이상의 분량을 이런 식으로 으로 채워넣기도 했다. 티토 만리오(Tito Manrio)를 5일만에 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분위기 덕분. 그래서 아예 파스티치오(pasticcio)라는 작법이 유행했는데, 자신의 이전 오페라나 다른 작곡가의 곡을 조합해서 새로운 오페라를 구성하는 작법이다. 현존하는 비발디의 51개 오페라 가운데 8개 이상이 이 파스티치오이며, 파스티치오라고 명시하지 않았더라도 곡 상당수를 다른 작곡가나 자신이 기존에 작곡했던 곡으로 채워놓은 오페라가 많다. 또한 비발디는 자신의 기존 오페라를 일부 개작하고 제목을 바꿔서 공연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예를 들어 1716년에 작곡된 '사랑과 증오의 영원한 승리(La costanza trionfante degl'amori e de gl'odii)'는 2년 후 '파르티아의 왕 아르타바노(Artabano, re dei Parti)'로 개작했고 1732년에는 다시 '도리클레아(Doriclea)'라는 이름으로 개작했다. 이런 경우를 모두 제외하면 순수한 비발디의 창작으로 인정할 수 있는 오페라는 그 수가 정말 적다. 그의 오페라 아리아들은 대체로 화려한 가창기교보다는 서정성이 돋보이며 동시대 다른 작곡가의 오페라에 비해 중창이나 합창이 상대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또한 비발디는 저음역대의 가수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그의 오페라에서는 소프라노가 대체로 1명만 등장하며 음역도 경이로운 수준까지는 올라가지 않는다. 그리고 오페라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아리아도 상대적으로 저음역대의 곡이 많다. 그의 전속 가수였던 안나 지로가 콘트랄토 가수라는 점이 많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악보에 충실하게 노래를 불렀을 때를 전제로 한 이야기이다. 당시의 오페라계에서는 가수들이 악보에 적혀 있는 그대로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자의적으로 장식음이나 기교적인 패시지를 집어넣어서 부르는 일종의 [[애드립]]이 관행처럼 되어 있었다. 애드립 능력은 가수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로 여겼을 정도이며 심지어 기본 선율마저 가수가 멋대로 바꿔 부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비발디 당시의 공연에서 실제로 불려진 아리아들은 현존하는 악보보다 훨씬 기교적이고 화려했을 것이다.[* 물론 헨델처럼 악보에 세세한 부분까지 철저하게 지정해서 가수들이 멋대로 부르지 못하도록 한 작곡가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였고 비발디의 경우 오히려 이런 애드립을 권장하는 작곡가였다.] 이 때문에 현대에 공연할 때에도 연주자의 재량에 따라 애드립을 추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만 아래의 예시는 악보에 충실한 가창에 해당된다. || [youtube(xFslWRZ_ejU, height=300, width=480)] || || 티토 만리오에서 티토(베이스)의 아리아 "Se il cor guerriero" || || [youtube(tEC1C2b4w2c, height=300, width=480)]|| || 몬테주마의 주요 아리아. 모두 메조 소프라노와 베이스를 위한 아리아이다. || 한편 비발디의 오페라는 반주도 상당히 인상적인데, 기악의 대가답게 [[니콜라 포르포라|합주 협주곡을 연상시키는 현란하고 색채감 넘치는 현악 반주가 돋보이며 오페라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묘사도 뛰어나다.]] 반주가 단순히 성악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비발디 오페라는 이 반주 때문이라도 충분히 들어볼만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